순교자 문준경 전도사 생애 17
섬마을 선교의 어머니, 문준경 전도사는 그렇게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이 장엄한 순교의 때는 195년 10월 5일 새벽 3시경이었다. 그 현장엔 백정희 전도사가 있었다. 그녀는 이미 숨을 거둔 피투성이의 문준경 전도사를 부여잡고 오열하고 있었다. 그런데 백 전도사를 죽이려고 하던 공산당원이 총알이 아깝다며 백 전도사를 죽이지 않고 내무소로 끌고 갔고, 집으로 가라고 하여 백 전도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백정희 전도사는 믿음의 어머니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를 평생 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순교후 3년 동안 한결같이 흰 무명베로 소복을 입고 새벽기도를 마치면 어김없이 문 전도사 무덤에 가서 찬송과 기도를 드렸다.
문준경 전도사는 세계기독교 역사에 남을 위대한 목회자이며 숭고한 순교자이다. 문준경이 순교자가 되기까지 그를 문준경이 되게 한 사람은 목포교회의 세 명의 목회자였다. 장석초 전도사의 성경 중심의 신앙은 문준경의 신앙의 터를 말씀에 굳게 세워주었다. 김응조 목사의 체험적이고 신유의 신앙은 문준경 전도사에게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고 그 능력이 현실에 나타나게 하였다. 이성봉 목사는 문준경 전도사가 목회자로 쓰임 받는데 큰 버팀목이 되었고 목회자로서 그녀의 일생의 진정한 멘토 역할을 하였다.
문준경 전도사는 이성봉 목사의 장점들을 하나하나 익혔고 이성봉 목사처럼 찬송의 은혜를 많은 성도에게 끼쳤다. 특히 이성봉 목사는 목포교회에 부임하여 문준경 집사를 만난 후부터 그녀의 신학생 훈련과정을 여러 방면으로 후원하고 기도했다. 사역자의 길로 들어서는 첫 관문인 신학교 입학추천서와 그 후 기숙사생이 될 수 있도록 보증자가 되어주었고, 문 전도사가 실습하는 기간에는 치리목사로 임자진리교회와 증동리교회 설립을 위해 협력하였다. 6‧25전쟁 중에 이 목사는 그녀가 위험한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보전할 수 있도록 강력히 권고하기도 하였다.
문준경 전도사는 하나님께서 1004섬에 보내신 천사였다. 그녀는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했고 예수님의 사랑을 삶 전 영역에서 실천하였다. 말보다 행동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그대로 행하였다. 문준경 전도사는 순교하였지만, 그는 신앙의 많은 열매를 한국교회에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