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문준경 전도사 생애 16
남편의 죽음 소식으로 슬픔에 잠겼지만, 문 전도사는 지체할 수 없었다. 자신이 빨리 가지 않으면 교인들이 다 죽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문을 박차고 증동리로 출발했다. 문에서 뒤늦게 나온 작은아버지의 아들 태기가 문 전도사를 좇아갔지만, 이미 그녀의 발길을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증동리에 도착한 문 전도사는 성도들에게 국군 소식을 전했다. 그곳에 모여 있는 동네 사람들에게도 같은 소식을 전하여 안심하라고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의 분위기와 상반되게 그 소식을 들었던 사람 중에는 공산당원들과 내통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문 전도사가 동네로 돌아온 사실을 비밀리에 전달해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목포 정치보위부에 보내어 자유의 몸이 된 줄 알고 배 아파하고 있었던 공산당원들은 자신의 발로 다시 찾아 들어온 문 전도사를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문 전도사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모두 몰살하겠다는 위협이 주민들에게 제대로 통했던 결과였다.
증동리에서는 인민군이 이미 빠져나갔지만, 그곳에는 인민군에 동조했던 잔당들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문 전도사와 우익들을 살해할 목적으로 임자도와 증도에서 하이에나처럼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일당들은 문 전도사와 법정 시비 끝에 7년 동안 집에서 자숙하라는 판결을 받은 전순정과 그 무리였다.
이들은 문준경 전도사를 주축으로 백정희 전도사, 김두학 장로 등 교인들과 우익들을 색출하여 15명 정도를 교회에서 600m 정도 떨어진 터진목으로 끌고 갔다. 이때가 1950년 10월 5일 자정을 넘긴 새벽이었다. 문 전도사는 성도들의 도움을 받아 피신할 수 있었지만, 백정희 전도사를 생각할 때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쌀쌀하고 축축한 바다 공기를 가르며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공산당들의 고함이 끌려 나온 모두를 공포로 몰아갔다.
공산당원들은 “이 간나 새끼들, 오늘 다 죽을 각오들 하라우. 이 할망구가 그동안 새끼를 많이 깐 예수쟁이란 말이지.”라고 문준경 전도사를 급박하였다. 이들은 “이 늙은이 반동분자, 이 동네 저 동네 다니며 예수교를 전하면서 알을 많이도 깠지. 내가 오늘 이 씨암탉 늙은이, 조선인민공화국의 방해자를 천당 보내주갔어.” 호통을 쳤다. 그러자 문준경 전도사는
“이보시오, 나만 죽이고 다른 사람들은 보내 주시오. 내 딸 백정희는 살아야 하오, 저 가엾은 것은 나를 따라다닌 죄밖에 없소.”라고 그들에게 백정희 전도사의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자 빨갱이들은 “너는 새끼를 많이 깠으니 살려둘 수 없다 죽여라. 죽여!”라고 소리 지르며 문준경 전도사를 사정없이 죽창으로 찌르기 시작했다. 피가 솟구쳐 나와 옷을 적시고 하얀 백사장 모래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문준경 전도사는 죽어가면서도 애원하였다.
“나를 죽여도 좋으니 우리 성도들은 살려주시오. 나는 죽지만, 당신들도 예수 믿고 천당에서 만나기를 바라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이 계집종의 영혼을 받으소서.”
이때 빨갱이 하나가 문준경 전도사의 턱 밑 숨골에 총을 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