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문준경 전도사 생애 4
문준경 집사는 전도하면서 성경 말씀을 전하면서도 늘 자신의 부족함을 느꼈다. 이제는 말씀을 더 잘 배워보고 싶었고,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헌신하여 죽을 때까지 말씀을 전하는 말씀의 사역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시아버지로부터 배운 한글 때문에 성경을 읽을 수는 있었지만, 그 말씀을 깊게 헤아릴 수가 없었기에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이성봉 전도사는 문준경 집사의 열정과 사명에 불타는 심정을 헤아렸고, 문준경 집사가 신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1931년 5월 5일 문준경 집사의 성서학원 입학추천서를 작성하여 문 집사에게 주었다. 문 집사는 앞날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을 가득 안고 서울로 향했다.
당시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은 학생들을 원비생, 자비생, 청강생 제도가 있었다. 입학 후 2개월 동안은 자비 부담이고, 이 기간 소명감이 없거나 신학생으로서 모습이 아닐 것 같으면 입학을 취소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기간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정식으로 원비생이 되고, 학비는 동양선교회 후원으로 해결된다. 경성성서학원은 신학생 양성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었다. 문 집사는 청강생 자격으로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 경우이다. 입학을 위한 면접 시간에 이명직 원장은 “어떻게 목포에서 이 먼 서울까지 공부하러 올 생각을 하셨지요? 제가 보기에도 연세도 꽤 많이 드신 것 같은데요?”라고 질문하였다. 그러자 문 집사는 “네 전도자가 되고 싶어 근 2년간을 기도해 오던 중 마음에 확신이 생겨 상경했습니다. 그리고 전도사가 되려면 성경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명직 원장은 구원의 확신과 소명에 관해 질문하였다. 그러자 문 집사는 “저는 1927년 3월에 전도를 받았으니 제가 예수님을 영접한 지 만 4년이 됩니다. 그리고 1927년 11월에 구원의 확신을 받아 다음 해 6월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원장님, 저는 전도사로서 일생을 주님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스데반 집사나 바울 사도와 같이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그 분들을 저는 매우 존경하고 있습니다. 또 전도 외에 그밖의 딴 일엔 아무런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 집사는 원장에게 자신이 전도사로서 목숨을 바쳐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확실하게 말했다. 그러자 원장은 마지막 질문으로 가족 관계를 물어보았다. 문 집사는 남편이 있지만, 딴 살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혼자나 마찬가지라고 답하였다. 이것이 문제되리라고 문 집사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러자 원장은 같이 살지 않더라도 남편이 있는 부인은 입학할 수 없는 것이 학칙이라고 말하였다. 후에 졸업을 해도 혹시 남편의 마음이 바뀌어 부인을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목회에 지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문 집사는 학칙에 의해 입학을 할 수 없다는 원장의 말에 너무나 실망하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 길이 주님께서 가라고 하신 것이리 때문에 결코 물러설 수 없었던 것이다. 문 집사는 원장에게 자신이 꼭 신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원장을 설득하였다. 얼마 후 원장은 학칙을 변경할 수는 없지만 문 집사를 원입생이 아니라 청강생으로 받아주겠다는 것이었다. 문 집사는 청강생으로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였다. 이렇게 해서 문준경 집사의 신학 공부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