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문준경 전도사 생애 6
원장을 찾아간 이성봉 목사는 서울에 온 김에 문 집사가 신학 공부를 잘하고 있나 알아보려고 왔는데 문 집사의 딱한 사정을 지금 들었다면서 운을 떼었다. 원장도 문 집사의 일을 이미 알고 있는 터라 학칙에 따라 남편이 있는 학생을 원비생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정을 말하였다.
그러자 이성봉 목사는 이명직 목사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확신 있는 눈빛으로 말하였다. “원장님, 그러면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네? 무슨 부탁일까요?”
“원장님,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니 우리 문 집사를 원비생으로 받아 주십시오. 문 집사의 남편은 죽어도 문 집사를 찾지 않을 사람입니다. 제가 그 사정을 잘 알고 있지요. 원장님, 규칙에는 예외도 있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우리 하나님이 쓰시려고 세운 훌륭한 여 집사님의 앞길을 규칙 때문에 막을 수 있겠습니까?”
이명직 원장은 규칙에 발목이 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여 결정을 미루고 있었는데, 이성봉 목사의 말을 통해서 막힌 것이 확 뚫리는 것 같았다. 원장실을 나온 이성봉 목사는 문 집사에게 다가가 문 집사의 사명의 길을 계속 걸어 나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문 집사는 오랫동안 기도한 것을 그날 응답받았다. 문 집사는 이제 기숙사에 들어가 생활할 수 있었고, 원입생으로 새로운 신학생 생활을 하게 되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렇게 하나님은 사명자의 마음을 다시 강하게 만드시고, 모든 어려운 환경도 바꾸어 주심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여 사명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계속 훈련하고 계셨다.
당시 경성성서학원 학생들은 학습과 실습을 병행하면서 학업을 이수했다. 6개월은 학교 수업, 나머지 6개월은 현장 실습으로 교회를 개척하거나 전도 사역을 했다. 당시 학생들은 현장 실습으로 대부분 수업이 없는 기간에 자기 고향으로 내려가서 전도 활동을 하고 교회공동체 모임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문준경 또한 마찬가지였다.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전도왕’으로 인정받고 있었고 충성스럽게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기에 학교의 이러한 제도는 문준경에게 제격이었다. 문준경은 이전부터 전도해 온 압해도와 목포 주변 섬 지역들을 제외한 다른 지역을 생각하는 가운데 남편이 있는 임자도와 시댁 식구들이 있는 증도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