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문준경 전도사 생애 10
문준경 전도사의 선교 영역은 증동리교회와 임자도 진리교회를 넘어 인근 지역으로 점점 확대되었다. 대초리는 문준경 전도사가 전도했던 지역으로 썰물일 때 돌 징검다리를 이용해서 갈 수 있는 마을이었다. 예로부터 이 길은 노두길이라고 했다. 물 때를 잘 알고 있어야 난감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 밀물 시간을 잘못 파악하여 건널 때에는 건너다가 금세 물이 무릎까지 차서 한 발짝도 움직이는 상황이 올 수 있었다. 문 전도사는 노두길을 건너다가 목숨에 위태로운 상황을 만난 적도 있었다. 문 전도사는 대초리에도 예배당을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그곳에 있는 영혼 구원을 위해 간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문 전도사의 이런 소망을 이뤄주셨고 1938년경 대초리교회가 세워졌다. 이후로도 문 전도사는 신안에 있는 섬 곳곳을 순회하며 전도하였고 그 결과 재원리, 방축리, 사옥도, 우전리, 지도둔곡, 지도봉리 등에 기도처가 세워졌다.
문준경 전도사는 배를 타고 나갈 때 다음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도서가
김정순 전도사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복음지고 가는 자야
무안군도 십일 면에 십만여 명 귀한 영혼
이 복음을 못 들어서 죄악 중에 헤매이네.
병들어도 치료기관 전신 전화 통신 기관
자녀위한 교육기관 기차 버스 교통기관
한 가지도 없는 도서 무엇보고 사는지요
[후렴]
달려라 그 귀한 발걸음 전하라 그 귀한 복음을
압해 지도 도초 안좌 자은 암태 임자 하의 비금 팔금 흑산에
전하여라 그 복음을
일제시대에 섬 지역도 일본의 잔악한 지배는 내륙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일제는 민족 분열 정책을 자행하여 서로 갈라지기를 조장하고 있었다. 증도에도 일제의 앞잡이를 하며 일제에 충성하여 자신의 출세와 영달만을 위하려는 자들이 있었다. 증도에서는 이들 대부분은 동네에서 소문난 깡패들이었다. 이 무리는 동네 곳곳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 사람들의 약점 잡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일제의 권력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골라 괴롭혔다. 이들은 증동리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처음부터 싫어했던 자들이었다. 그래서 일본의 동아시아 전쟁물자로 사용해야 한다는 구실로 교회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아 갔다. 심지어는 교회의 종까지도 탈취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