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문준경 전도사 생애 14
전쟁의 위협이 증도에까지 미치자 문 전도사는 자신을 돕고 있었던 백정희 전도사와 양도천 전도사를 먼저 피신시킬 생각이었다. 배를 미리 준비시키고 이 두 전도사를 배편으로 해서 육지로 나가게 선착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전씨 일당은 출발하려고 하는 배에서 두 전도사를 끌어내리고 그들을 마구 폭행하기 시작했다. 두 전도사는 이유도 모른 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두들겨 맞아 그만 실신하게 되었다. 이 악당들은 폭행 후에 유유히 사라졌다. 교인들은 거의 반죽은 상태가 된 두 전도사를 정성껏 간호했다. 교회 젊은이들은 전 씨와 그 일당에게 복수하려고 일어섰지만, 문 전도사와 성도들은 주님을 위해서 참으로라는 말로 그들의 분노를 가라앉혔다.
인민군의 신임을 받은 이 일당은 그동안 못마땅하게 생각해 왔던 교회를 다시 장악하기 시작했다. 증동리교회당에 노동당인민위원회 간판을 달고 자신들 마음대로 교회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교회 사택에 있는 문 전도사와 백 전도사를 불러 자신들의 식모 역할을 시켰다. 백 전도사는 그들에게 끌려가 온갖 위협과 구타를 당하면서 자신의 첩이 되면 살려주겠다는 희롱을 받기도 하였다. 양도천 전도사는 뒷방에 몇 날 동안 가두어 두고, 필요할 때만 나와 시중을 들게 하였다. 그는 1차, 2차에 걸쳐 감금되었을 동안 변기 옆에서 자야만 했었다. 그야말로 일본 앞잡이들이 공산주의자가 되어 교회공동체를 괴롭힌 것이다.
그 당시 문준경 전도사의 남편 정근택 씨도 소실과 함께 공산당에 끌려가 잡혀 있었다. 이유는 남보다 잘살고 글을 안다는 것이 죄목이었다. 누구 하나 옥바라지 할 사람이 없는 상황에 문 전도사는 아무런 원망 없이 남편과 소실을 찾아가 그 필요를 채워주었다. 옷가지를 챙겨 가져다주고, 더러워진 옷을 빨아서 다시 넣어 주었으며 음식도 챙겨왔다. 이러한 문 전도사의 모습에 그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본면 분주소에 갇혀 있는 양 전도사, 내무소에 갇힌 백 전도사, 옥에 갇혀 있는 남편과 소실, 주변 사람들의 비참한 상황에 문 전도사는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붙잡혀 있는 사람이 언제 다시 살아서 돌아올지 아무도 모르는 시기였다. 잔혹한 공산당들은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마음에 거슬리면 잡아다가 몰매로 실신하게 하고, 밤에 쥐도 새도 모르게 끌고 나가 총살해 버리기 때문이었다.
문 전도사는 갇혀 있는 사람들을 옥바라지하면서 밖에서 성도들의 마음을 보듬고 천국 소망을 잊지 않도록 그 와중에서도 전도자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였다. 이를 주시하고 있었던 공산주의자들은 특별한 사상 교육이 필요한 교회 사역자들을 모아 목포 보위부로 이송할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