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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선박사와 평택대학교 1
관리자 [master]   2024-08-01 오후 1:53:48 1187

피어선 박사와 평택대학교 1

 

평택대학교의 전신인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은 피어선 박사의 유지에 따라 설립된 초교파적인 성경학원이었습니다. 평택대학교회의 성도들이 피어선 박사의 생애와 평택대학교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피어선 박사와 평택대학교를 시리즈로 올리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Ⅰ. 피어선의 생애

 

피어선(Arthur Tappan Pierson, 1837-1911) 박사는 19세기 후반 미국이 낳은 외지 선교의 선구자인 동시에 창시자이다. 그는 선교잡지인 ‘세계선교비평지’(The Missionary Review of the World)의 편집인으로서 미국 선교 운동의 확장 기간 중 그 운동의 연대를 기록하고 방향을 설정하였다. 그는 또 위대한 설교자였으며 탁월한 성경 해석자였다.

1910년 후반 피어선은 서울에서 6주(1910.12~1911.1) 동안 지냈다. 피어선의 소망은 죽기 전에 선교 현장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의 계획은 한국의 기독교인 방문, 선교사를 위한 성경 공부 인도 및 출판을 위한 현지답사였다. 피어선은 한국에 있는 동안 한국 기독교인의 성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들의 영적인 힘, 복음적 열정, 믿음, 자기희생, 성경 공부에 대한 열망이 바로 그것이다.

피어선 박사는 한국교회를 돕기 위해 성경학교를 세우기 위한 기금을 모으고자 하였다. 그러나 병과 죽음으로 그는 꿈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친구와 지지자들이 충분한 자금을 모아 서울에 ‘피어선 기념 성경학원’을 열었다. 피어선 박사 삶의 이야기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목적에 충실했던 한 인간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 준다.

 

1. 출생과 유년 시절

 

피어선의 조상인 아브라함(Abraham) 피어선은 영국 요크셔 출신 청교도로서 1639년 미국 매사추세츠 플리머드(Massachussetts Plymouth)로 이주해 왔다. 아브라함은 강한 성격을 지닌 교회와 국가의 권위 있는 지도자였으며 개척지 미국에서 기독교적인 이상을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는 코네티컷의 브랜포드에서 18년간의 목회 생활을 통해 인디언 모헤간족과 모히칸족에게 선교하였다. 그는 코네티컷 인디언의 친구이자 영적 충고자로서 1687년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브라함 피어선의 아들 아브라함 피어선 2세 역시 목사였으며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의 설립자 가운데 한 사람인 동시에 초대 총장을 역임하였다. 아브라함 피어선의 또 다른 자손인 존 피어선은 우드브리지(Woodbridge)와 뉴저지에서 목회하였다. 그는 1746년 뉴저지대학(지금의 프린스턴대학)의 이사로도 활동하였다. 피어선의 조상들은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의 교육에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피어선의 어머니 샐리 앤 피어선 또한 청교도의 혈통에서 1802년 2월 2일 뉴저지의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엄청난 활동력을 가진 독실하고 동정심 많은 부인이었다.

아더 테이펀 피어선(Arthur Tappan Pierson)은 장로교회 장로요 경리사인 스티븐 하이네스 피어선(Stephen Hainess Pierson)과 샐리 앤 휠러(Sally Ann Wheeler) 사이에서 1837년 3월 6일 미국 뉴욕의 채탬 스트리트(Chatham Street)에서 태어났다. 아더 피어선은 네 명의 남자 아들 중 막내였고 10명의 자녀 중 아홉 번째 자녀였다. 샐리와 스티븐 피어선은 그의 친구이자 후견인인 Arthur Tappan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자신들의 아기 이름을 Arthur Tappan Pierson이라고 지었다. Arthur Tappan은 기업 경영에 기독교 정신을 도입하여 직원들에게 교회 출석을 독려하고, 밤 10시에는 반드시 귀가하도록 하였다. 그는 찰스 피니 지지자였으며, 피니의 영향을 받고 교회에서 지정 유료 좌석 제도를 폐지하고 노예폐지 운동의 지도자였다.

형들과 누나 사이에서 자란 그는 개인주의에 빠질 수 없었다. 그의 부모는 매우 신실하여 자녀들에게 교리문답을 가르쳤고 성서의 31절을 외우게 했으며 아침저녁으로 가정예배를 하였다. 아더는 어려서부터 아침, 저녁 주일학교 그리고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였으며, 7살이 되었을 때 쥬니어 선교단에 들어갔다. 이처럼 아주 어렸을 적부터 피어선은 선교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아더가 11살이 되는 1848년 그는 마운트 워싱톤 콜리지트 인스티튜트(Mount Washington Collegiate Institute)에 입학하였다. 거기서 그는 진실한 기독자요 정치 분야와 자선사업에 매우 활동적인 죠지 W. 클라크 교장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되었다. 아더는 윌슨 프라너(Wilson Phraner) 선생으로부터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워 12살 때 부터 그리스어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다. 1850년 아더는 테리타운에 있는 감리교회에서 열린 특별부흥회에 참석하여 회심을 체험하였다. 회심을 체험한 이후 그는 소년부의 기도 모임에서 간증을 하거나 후배들을 지도하였다. 이미 13살 때에 시편 62편 8절에 의거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기도 하였다. 1853년 가을 아더는 뉴욕 싱싱(Sing Sing)에 있는 오시닝 스쿨(Ossining School)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매부인 J. P. 런디 목사의 가르침과 가장 큰 누나인 애니의 보살핌 속에서 종교적인 훈련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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