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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선박사와 평택대학교 6
관리자 [master]   2024-08-07 오후 3:22:09 708

피어선 박사와 평택대학교 6

 

① 포트 스트리트 장로교회 목회(1869-1882)

 

후천년설에서 전천년설로

 

피어선과 조지 뮬러는 함께 성서를 연구하면서 예수의 지상 재림에 관한 전・후 천년 왕국의 해석 차이로 논쟁하기도 하였다. 피어선은 천년 후 즉, 인간의 노력과 선량한 기독교 문명이 가져다준 천 년 동안의 번영이 있은 후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을 늘 믿고 있었다. 후천년왕국설은 교황권이 패망하고 참 교회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징조를 갈망하던 조나단 에드워드의 견해였다. 후천년왕국설은 시민전쟁 기간 중 북부에 영향을 주었으며,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 위하여 손에 손을 맞잡고 하나님과 더불어 일하기를 원하는 사회 복음의 옹호자들을 격동시킨 것이 또한 후천년왕국설이었다. 그런데 뮬러는 후천년왕국설의 효능에 관한 피어선의 논증을 듣고 “친애하는 형제여…그 중의 어느 하나도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것이 없군요.”하는 한 마디의 답으로 입을 다물게 하였다. 뮬러가 전천년왕국설에 대한 결정적인 주석을 전개하자 피어선은 확실한 성서적 변증을 인정한 나머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년 왕국 후가 아닌 전에 재림하실 것을 믿었다.

전천년왕국설이나 천년왕국설은 흔히 소극적 세계관의 일부로 특정 지어져 왔다. 전천년왕국설에 대한 불신은 퍽 오랜 사실로써 1844년 밀러 소문에 기인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윌리엄 밀러를 추종하던 강림론자들은 ‘승천 예복’을 입고 산 위에 서서 자기들을 하늘로 데려갈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전천년왕국설은 삼등 교육을 받고 자동차 뒤에 “휴거 때에 이 자동차는 운전사를 잃게 될 것입니다”라고 써 붙이고 다닐 만큼 아무 데도 구애받지 않고 사는 목사들의 축자 해석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들은 편견적인 면을 내포하고 있어서 예수계서 곧 재림하실 거라는 신약교회의 큰 소망을 진지하게 취급하지 않고 있다. 아더 피어선을 포함한 황금 시대의 여러 지도급 성직자들은 전천년왕국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반계몽주의자들은 결코 아니었다.

피어선의 전천년왕국설은 도시 복음화와 선교를 위한 자신의 노력을 무시하지 않았다. 피어선이 뮬러에게 대중 복음화의 긴박성과 예배 좌석의 자유화 및 예배의 간소화에 관해 설명을 하자 뮬러는 피어선에게 “하나님께서 빛을 당신에게 주시고 그 빛을 사용할 책임을 당신에게 맡기신 것이요”라고 말하였다. 뮬러는 피어선에게 사회문제를 기피하고 소극적으로 주의 재림만을 기다리라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피어선에게 그가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지도와 후원을 철회하실 거라고 말했다.

피어선에게 있어서 전천년왕국설이 의미를 가졌던 것은 후천년왕국설의 도식에 따라 세상이 기대하는 대로 점점 좋아질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피어선은 열심히 일하면서도 자신을 포함한 목사들의 노력으로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케 할 수 없다고 보았다. 피어선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케 할 수 있다는 신념을 포기하고 자신의 노력과 세상의 지속적인 상황 간의 모순을 해소시키려고 하였다. 문제는 그가 어떻게 설교를 잘 했느냐에 있지 않고 그 누구도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하지 않은 데 있었던 것이다.

 

조지 뮬러와 피어선

 

조지 뮬러와의 관계는 피어선이 생애에 있어서 가장 의미 깊은 것이었다. 그들은 뮬러가 세상을 떠나고 1898년까지 서로를 위해 기도하였다고 한다. 피어선은 뮬러의 정평있는 자서전을 썼는데 매우 값진 책으로서 재판을 거듭하였다. 뮬러는 프로이센 태생으로 경건주의자 A.H 프랑케(Franke)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뮬러와 그의 부인은 성서의 원리대로 살고자 월급으로 받은 돈을 전부 나누어주고 최소한의 생활비로 살았다. 그는 1829년에 전천년왕국설 지지자가 되었고 1832년에는 영국의 브리스톨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성서의 방법’을 좇아 고아원을 운영하면서도 매 끼니를 하나님께서 마련하실 것으로 믿고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1870년에 이르러서는 뮬러는 다섯 개의 고아원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원아의 수는 2천여 명에 달하였으며 순전히 믿음으로 이끌어갔다. 조지 뮬러와 중국 내지 선교회의 J. 허드슨 테일러는 교단이 지원하는 정기적인 봉급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고자 노력한 19세기의 특출한 모범인물들이었다.

피어선은 그의 강단에서의 명성과 장로교단 내에서의 전국적인 평판 그리고 복음주의 연맹 및 기타 여러 에큐메니칼 단체들과 폭넓은 관계로 인해서 종종 다른 교회들로부터 목회 청빙을 받았다. 그가 한번은 뉴욕의 어느 소문난 교회로부터 연봉 1만 달러의 제의를 받고 거절한 일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피어선은 인디애나폴리스의 제2장로교회로부터 거듭 간청을 받고 아울러서 도시 복음화의 프로그램은 피어선의 손에 자유롭게 맡긴다는 약속을 받고 1882년 7월 19일부로 13년에 걸친 포트 스트리트에서 그의 양심과 성서가 요구한 대로 하나님과 인간을 섬길 수 있도록 하여 달라고 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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