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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선박사와 평택대학교 8
관리자 [master]   2024-08-09 오전 10:25:07 1004

피어선 박사와 평택대학교 8

 

3) 필라델피아 목회(1883-1889)

 

1883년 여름 피어선은 실업인 와너메이커(John Wanamaker)가 남부 필라델피아에 창립한 주 일학교와 관계된 베다니 장로교회의 청빙을 받았다. 당시 필라델피아는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였다. 그는 처음에는 청빙에 응할 생각이 없었으나 베다니 장로교회가 전천년왕국설도 받아들이고 성서에 기초한 교회로 폭넓게 교인을 포용하고 있다는 회신을 와너메이커로부터 받고, 하나님께서 베다니에서 목회할 수 있도록 장애가 되는 모든 것을 제거하신 것으로 믿었다. 피어선은 청빙을 수락하고 1883년 10월부터 필라델피아에서 목회를 시작하였다.

1858년 2월 와너메이커는 19세의 약관으로서 필라델피아의 슈일킬 강변에 있는 사우스 스트리트(South Street) 남쪽에 교회 계통 학교를 세울 결심을 하였다. 거리의 갱단이 와너메이커를 방해했지만 아일랜드계 자원 소방대원들이 1857년 도시 부흥집회 때 와너메이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어서 와너메이커를 돕게 되자 아무도 와너메이커를 괴롭힐 수 없었다. 이 학교의 첫 모임에 27명의 학생이 참석하였지만 1852년 7월에는 300명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1859년 1월에는 노동자들을 위한 학교가 소예배실이 되었다. 와나메이커는 학관 선교라는 교명을 베다니 주일학교로 개명하였다. 1865년 9월에는 불어나는 주일학교에 대비하여 20명이 베다니 장로교회를 조직하였다.

와너메이커가 피어선을 베다니 장로교회의 목사로 추천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성서교사로서의 피어선의 평판과 주일학교교사 훈련선생으로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피어선과 와너메이커는 베다니 장로교회 및 주일학교의 장래와 목표에 대해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피어선이 첫 번째 시도한 일은 주일학교 교사반을 조직해서 그들로 하여금 교과를 준비하도록 도와주는 일이었다.

1885년 베다니교회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행한 연설에서 피어선은 베다니대학을 확충해서 노동자들이 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1884년도 과목 중에는 독일어, 부기, 기계제도, 양재, 발성법, 교회사 등이 있었다. 1883-84년에 등록한 학생은 700명이었다.

피어선은 예배에서도 베다니 장로교회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생각해오던 것을 실천하였다. 피어선이 부임하기 전에 이미 베다니 교회는 복음성가를 부르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피어선은 형식적인 고전음악은 회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꺼려했기 때문에 “성별함을 받지 못한” 성가대원들로 구성된 유급성가대 제도를 반대하였다. 음악에 상당한 재능을 지닌 피어선은 장로교 찬송가 작가로서 인정을 받기도 하였다. 1894년 피어선은 고든(Adoniram Judson Gordon)과 함께 자신의 복음찬송가인 ‘찬송가 완성집’(The Coronation Hymnal)을 공동 편찬하였다.

피어선이 베다니 장로교회에서 했던 사역은 다음과 같다.

① 양재학원.

② 백색리본군대(White Ribbon Army): 어린이 절제운동조직. 500 명이 교회와 주일학교에서 금주를 맹세했고, 나중에 여러 지역으로 확대되어 몇 년 안에 수천 명이 등록함.

③ 동전저축은행: 가난한 사람들에게 저축 생활을 권장하는 운동.

④ 기도회, 숙녀후원회, 남성문서선교회, 청년회, 선교회 활동 장려.

⑤ 전도단: 도시산업선교 사업을 착수하고 도덕 및 절제 생활 운동.

⑥ 교회부채청산을 위한 모금 운동: 재정적으로 확고한 기반을 마련함.

피어선은 노사문제, 도시 빈곤, 산업화, 대도시에 있어서 기독교의 침체 등에 관심을 가진 교인들의 참여로 종교 및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피어선은 워싱톤에서 1887년 12월에 열린 복음주의 연맹 제1차 대회에서 “교회로부터 소외된 대중”에 관하여 강연하였다. 피어선에 의하면 하류 계층이 교회에 무관심한 이유는 교회가 상류계층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류와 하류 계층 간의 공동체 의식의 결여로 서로가 다른 이웃 관계를 갖고 살아가고 있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불안한 직업을 갖고 무시당하며 자라난다는 것이었다. 피어선은 교회가 귀족계급과 연합함으로 계급 차별을 영구화시키고 있다고 하였다. 피어선은 교회가 이웃에 대한 사랑을 외면할 때 침체하며 값비싼 건물의 소유는 계급정신을 영속시키며 교회가 민주주의 보다 금권주의 내지는 소수 독재정치에 기초하여 조직되고 지정좌석제 등으로 대중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그는 값싼 동정이 아닌 가난한 이들 속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자선 행위라고 강조하였다. 그가 목회하는 베다니교회는 복음주의연맹이 가졌던 사회에 대한 프로그램을 착수하였던 것이다.

피어선은 주님께서 자신을 외지 선교를 위한 순회 목회를 하도록 인도하고 계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1899년 봄에 선교 장려를 목적으로 캐나다를 여행하고 노드필드에서 보낸 후 1889년 9월 2일 베다니 교회를 사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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