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선 박사와 평택대학교 12
Ⅱ. 개척지 방문 및 한국선교 (4)
일본에서 한 달을 지낸 후 피어선은 한국으로 여행했으며 6주 동안 서울에 머물렀다. 한국 어떤 교회에서 그는 통역자를 통해 설교했으며 선교사들과 매일 성경 읽기 시리즈를 정리했다. 그러나 고통이 너무나 컸다. 의사들은 더 이상의 강연을 금하고 그를 세브란스 병원으로 보냈다. 피어선 박사는 굴복하기가 어려움을 발견하고 “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수천 마일을 왔는데 이제 여러분은 내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군요.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메시지를 전할 생각을 포기하고 여기 앉아 있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의사들은 당황했다. 왜냐하면 한가하게 누워 있는 결과가 대중 설교의 간장보다 더 심각할지 모른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침내 일주일에 두 번만 강의할 것을 그에게 권했다. 그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교회에서 말할 때 그에게는 새로운 힘이 주어지는 듯했다. 그는 살아 있는 말씀과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 인간의 자비로우신 구세주의 특성과 임무를 설명하면서 이 고별 메시지들에 그의 영혼의 온 정열을 쏟아부었다.
어느 주일 오후, 그는 격심한 고통 속에 있었으므로 선교 단체들과 만남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사위인 프레드릭 S. 커티스 목사는 그가 보낼 어떤 메시지가 있는가를 물었다. 처음에는 힘들게 몇 마디 적기 시작했지만 힘이 돌아오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뱃속의 불’이 되었다. 이 ‘천국의 비전’ (행 26:19) 이라는 제목의 고별 설교는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다.
의사들이 중국과 인도를 방문하려는 그의 계획을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마침내 그에게 말했을 때 그 여행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에게 심한 고통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밤낮으로 그의 생각이 모든 장애물에 대한 승리를 막는 자신 안에 있는 불신앙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이와 싸웠다. 그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누워 조용히 죽을 생각을 하고 있는가? 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외쳤다. 후에 의사들은 “이 얼마나 굽힐 줄 모르고 지칠 줄 모르는 정신인가!”라고 그를 찬양했다.
피어선은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가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다시 힘을 얻어서 그의 동방 선교여행을 끝마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그는 또한 미국에서 그가 본 진기한 일들에 대해 말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는 많은 선교사를 알게 되었다. 일본과 한국 크리스천도 알게 되었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에 투쟁하면서 깊은 영적 회심을 체험한 한국 크리스천을 만난 피어선은 한국교회의 사도적인 특성과 희생정신 그리고 성서 연구에 대한 그들의 갈망을 보고 듣게 되었을 때 고국에 가서 친구들의 협조를 받아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 협조를 통해 한국 땅에 성경학원을 세우려고 노력했다. 이 일을 그 개인적으로는 할 수 없었지만, 친구들이 이 일에 협조하여 한국 서울에 성경학원을 세웠다. 이것이 오늘 평택대학교의 전신인 피어선기념성경학원이다.